존 웨슬리의 날짜 표기에 관하여
이제 그의 회심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앞서 언급된 웨슬리 자신이 표기한 날짜와
실제 오늘날의 날짜에 대한 차이를 보이는 것에 있어
우리는 단지 웨슬리의 글을 옮겨온 것 뿐이다.
그리고 참고로 기억해야 할 것은
웨슬리의 기록 날짜 표기를
실제 오늘날 날짜로 적용시 동일한 날짜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웨슬리의 회심 날짜와 요일은 그의 기록을 따라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시간은 저녁 9시 15분전, 곧 8시 45분이다.
이것을 오늘날의 달력으로 환산하면
표기 날짜 + 11일, 즉 1738년 6월 4일 화요일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따라야 할까?
바로 웨슬리의 기록표기이다.
1700년대에서 11일이 삭제 되었으므로
실제 이 기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은 맞지만
차이의 시대 속 표기 날짜,
웨슬리가 살았던 시대의 날짜 5월 24일 수요일이다.
굳이 시대의 간극을 적용하여
'웨슬리여, 그대의 시대적 날짜에 차이가 발생했으니
우리는 당신의 날짜를 5월 24일로 볼 수 없으며
6월 4일로 볼 것입니다'라고 하면 시대의 차이 기록을
변경하려는 후대의 무리한 요구가 될 수 있다.
정확한 날짜를 파악하는 것은 후대의 과제이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를 파악한 것을 전제로
웨슬리의 표기를 그대로 남겨 놓으며
이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역사의 불완전한 기록을 후대에 알려주는 것과
이 기록을 굳이 고쳐야할 이유 다른 문제가 된다.
이미 기록된 표기이기 때문이다.
"5월 24일(수)에 이 날짜를 지켜면서
오늘날로 환산하면 6월 4일(화)이 됩니다."
하지만 웨슬리의 시대적 날짜와
그에 따른 인식의 정서는 5월 24일 수요일이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회심일과 요일은
첫째, 웨슬리 자신이 표기한 날짜와 요일이며
둘째, 이 날짜는 표기의 수가 아닌 의미의 수로
우리에게 남는 것이다.
비록 오늘날과의 요일과 날짜의 차이가 있어
당시 수요일이 실제는 오늘날 화요일이며
5월 24일이 오늘날 6월 4일이라 하더라도
웨슬리에게 있어 24일은 수요일로서
수요 저녁 집회에 참석했으며
11일이 빠진 1738년대에 있어 5월에
회심을 한 것이다.
의미의 날짜와 요일이 되었기에
우린 웨슬리 자신이 경험하고 기록한
그 날짜를 기억하고 그 요일을 기억한다.
What occurred on Wednesday 24,
I think best to relate at Large,
after premising what may make it the better understood.
(1738년 5월: 역주) 24일 수요일에 일어난 일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기 위해서는 그 일의 전후에
있었던 일들을 연결하여 서술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된다.
I continued thus to seek it (though with strange
indifference, dullness, and coldness, and unusually
frequent relapses into sin) till Wednesday, May 24.
I think it was about five this morning that I opened
my Testament on those words,
“There are given unto us exceeding great
and precious promises, even that ye should
be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II Peter 1:4].
나는 이런 식으로 그 믿음을 구하기를
(그러는 동안에 이상하게도 관심이 흐려지고, 감정이 둔해지고,
냉랭해지고, 전과는 달리 죄에 자주 반복해 빠지고는 했지만)
5월 24일 수요일까지 계속했다. 아침 5시 경이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성경을 펴서 다음의 말씀을 받았다: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 [벧후 1:4]
......
In the evening I went very unwillingly to a society
in Aldersgate Street, where one was reading Luther’s
Preface to the Epistle to the Romans.
About a quarter before nine, while he was describing
the change which God works in the heart through faith
in Christ, 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I felt I did trust in Christ, Christ alone, for salvation;
and an assurance was given me that He had taken away
my sins, even mine, and saved m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저녁 때 나는 매우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올더스게이트가(街)
(Aldersgate Street)에 있는 한 모임에 갔다.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Luther)의 ‘로마서를 위한 서문’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전쯤에,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나의 마음이 이상하게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신뢰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나의’ 죄를, 바로 ‘나의’ 죄를
이미 가져가 버렸고, ‘나’를 죄와 사망의 율법으로부터
구원하셨다고 하는 확신이 나에게 주어졌다.
이제 그의 회심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앞서 언급된 웨슬리 자신이 표기한 날짜와
실제 오늘날의 날짜에 대한 차이를 보이는 것에 있어
우리는 단지 웨슬리의 글을 옮겨온 것 뿐이다.
그리고 참고로 기억해야 할 것은
웨슬리의 기록 날짜 표기를
실제 오늘날 날짜로 적용시 동일한 날짜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웨슬리의 회심 날짜와 요일은 그의 기록을 따라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시간은 저녁 9시 15분전, 곧 8시 45분이다.
이것을 오늘날의 달력으로 환산하면
표기 날짜 + 11일, 즉 1738년 6월 4일 화요일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따라야 할까?
바로 웨슬리의 기록표기이다.
1700년대에서 11일이 삭제 되었으므로
실제 이 기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은 맞지만
차이의 시대 속 표기 날짜,
웨슬리가 살았던 시대의 날짜 5월 24일 수요일이다.
굳이 시대의 간극을 적용하여
'웨슬리여, 그대의 시대적 날짜에 차이가 발생했으니
우리는 당신의 날짜를 5월 24일로 볼 수 없으며
6월 4일로 볼 것입니다'라고 하면 시대의 차이 기록을
변경하려는 후대의 무리한 요구가 될 수 있다.
정확한 날짜를 파악하는 것은 후대의 과제이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를 파악한 것을 전제로
웨슬리의 표기를 그대로 남겨 놓으며
이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역사의 불완전한 기록을 후대에 알려주는 것과
이 기록을 굳이 고쳐야할 이유 다른 문제가 된다.
이미 기록된 표기이기 때문이다.
"5월 24일(수)에 이 날짜를 지켜면서
오늘날로 환산하면 6월 4일(화)이 됩니다."
하지만 웨슬리의 시대적 날짜와
그에 따른 인식의 정서는 5월 24일 수요일이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회심일과 요일은
첫째, 웨슬리 자신이 표기한 날짜와 요일이며
둘째, 이 날짜는 표기의 수가 아닌 의미의 수로
우리에게 남는 것이다.
비록 오늘날과의 요일과 날짜의 차이가 있어
당시 수요일이 실제는 오늘날 화요일이며
5월 24일이 오늘날 6월 4일이라 하더라도
웨슬리에게 있어 24일은 수요일로서
수요 저녁 집회에 참석했으며
11일이 빠진 1738년대에 있어 5월에
회심을 한 것이다.
의미의 날짜와 요일이 되었기에
우린 웨슬리 자신이 경험하고 기록한
그 날짜를 기억하고 그 요일을 기억한다.
What occurred on Wednesday 24,
I think best to relate at Large,
after premising what may make it the better understood.
(1738년 5월: 역주) 24일 수요일에 일어난 일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기 위해서는 그 일의 전후에
있었던 일들을 연결하여 서술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된다.
indifference, dullness, and coldness, and unusually
frequent relapses into sin) till Wednesday, May 24.
I think it was about five this morning that I opened
my Testament on those words,
“There are given unto us exceeding great
and precious promises, even that ye should
be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II Peter 1:4].
나는 이런 식으로 그 믿음을 구하기를
(그러는 동안에 이상하게도 관심이 흐려지고, 감정이 둔해지고,
냉랭해지고, 전과는 달리 죄에 자주 반복해 빠지고는 했지만)
5월 24일 수요일까지 계속했다. 아침 5시 경이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성경을 펴서 다음의 말씀을 받았다: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 [벧후 1:4]
In the evening I went very unwillingly to a society
in Aldersgate Street, where one was reading Luther’s
Preface to the Epistle to the Romans.
About a quarter before nine, while he was describing
the change which God works in the heart through faith
in Christ, 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I felt I did trust in Christ, Christ alone, for salvation;
and an assurance was given me that He had taken away
my sins, even mine, and saved m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저녁 때 나는 매우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올더스게이트가(街)
(Aldersgate Street)에 있는 한 모임에 갔다.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Luther)의 ‘로마서를 위한 서문’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전쯤에,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나의 마음이 이상하게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신뢰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나의’ 죄를, 바로 ‘나의’ 죄를
이미 가져가 버렸고, ‘나’를 죄와 사망의 율법으로부터
구원하셨다고 하는 확신이 나에게 주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