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소개된 이새의 아들 다윗,
그는 집안에서 마치도 배다른 형제의 마냥 취급을 받고 있는
모습이 종종 소개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의구심에는
다윗의 고백 역시 한몫하고 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27:10-
제외된 다윗 1
이것은 다윗 스스로의 느낌이나 일시적인 생각이 아닌 듯 하다.
사울왕 당시 하나님은 사무엘을 보내어 사울을 대신할 왕을 찾게 하셨는데 그가 도착한 곳은 다윗의 아비, 이새의 집이었다.
왕으로서 기름부음 받을 자가 이새의 집에 있다는 말에 이새를 자신의 아들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이 현장에서 다윗을 제외된 상태였다.
첫째 아들부터 마지막까지 검증하는 동안 하나님의 감동이 없자
사무엘을 이새의 모든 아들이 다 온 것이냐 묻는다.
이때 이새의 반응은 그리 기대에 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삼상16:11-
왕을 간택(揀擇)하는 자리이기에 급한 나머지 임시로
막내 다윗을 양 돌보는 일(재산관리)로 맡겼다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늘 하던 대로 다윗은 아비의 양떼를 지켜왔고 이것은 훗날 다윗이
양떼를 돌보던 추억을 말할 때 더욱 증거 되는 일이었다.
또한 양을 돌보는 동안 그는 여러 번의 위험에 처할뿐더러
혼자서 그 상황을 대처했음을 말하고 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삼상17:34-
이러한 그의 어린 시절은 그가 추억하는 것은 형들과는 달리 소외된 상태로
아비의 재산을 지키며 혼자서 지내는 동안 자연스레 시가(詩歌,시와 노래)가 발전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을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소년 중 한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삼상16:16~18-
부모에 대해 그가 마치도 자신을 버렸다고 고백하는 시점은 사울왕의 휘하로 들어간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부모가 늘 그렇게 자신을 대해온 것에 대한 일종의 평상적 느낌, 심리적 상태를 나타내주는 것이다.
제외된 다윗 2
다윗을 향한 부모의 태도와 아울러 그의 형제들 역시 다윗에게 그리 달갑게 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블레셋 군대와의 전시(戰時)상태에서 대기 중인 형들을 찾아간 다윗은 형들에게 그리 좋은 대면은 갖지 못하였다.
장형 엘리압이 다윗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삼상17:28-
만일 다윗이 그저 어린 아이 정도의 상태여서 전쟁터에 왔다면 장형 엘리압의 꾸지람이
맞을 듯 보이나 이것은 그렇지 않다. 그가 실제 철없는 어린아이 상태라면 가족의 양떼를
돌보는 일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