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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축복기도에 나타난 메시야 도래설에 관하여(01)
2013-08-14 08:30:44 | 가로수 | 조회 5540 | 덧글 0

 

야곱의 축복기도에 나타난 메시야 도래설에 관하여

 

대게 야곱의 예언적 기도에 나타난 메시야 도래설에 관해 그것이 왜 요셉이 아닌 유다에게서 나왔냐는 것에

여러 가지 추측된 가설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존 성경(개역한글판)의 문자 그대로 표현을 빌려 요셉에게서 다스리는 목자가 나올 것이다에서

요셉의 줄기에서 뭔가 예수님의 연관성을 찾아보려 애쓰는 흔적들이며,

 

둘째는 유다의 경우 찬송이라는 말과 원수를 짓밟을 것이라는 말로 이것을 예수님께서 찬송 받으시는 것과

어둠권세를 이기신 것에 비유하여 유다의 줄기로 해석하려는 것입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개역한글판 성경에서 번역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점입니다.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49:24)

 

여기서 그로부터가 실제 요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야곱을 지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언뜻보면 문장 구조에서 가 마치도 요셉을 칭하는 듯하나 요셉을 축복하고 있는 야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요셉을 축복하는 야곱은 그 줄기의 배경에 하나님이 계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축복하는데 그 축복의 줄기, 그 뒷배경에는 단순히 아버지 야곱, 인간 야곱이 아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말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49:24의 다음 비교성경을 보면 더욱 명료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개역개정판)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야곱의 전능자이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

 

(NIV)But his bow remained steady, his strong arms stayed limber,

 because of the hand of the Mighty One of Jacob, because of the Shepherd, the Rock of Israel,

요셉의 팔에 힘이 있는 이유는(Because) 야곱의 전능자, 그 분의 손이 있기 때문이며,

그 전능자는 이스라엘의 반석이며 목자이다.

 

(공동번역) 활은 꺾이고 팔마다 힘줄도 끊어졌다. 이것은 야곱의 강하신 이의 팔이 하신 일,

 이스라엘 목자의 이름으로 이룩된 일이다.

 

(현대인) 오히려 그의 활이 견고하고 그의 팔에 힘이 있으니 이스라엘의 반석이시며

 목자가 되시는 야곱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다.

 

따라서, 야곱의 축복기도에 나타난 메시야 도래설은 12아들 가운데 어느 한 줄기에게서

메시야가 나타날 것이라는 해석이 아닌 야곱의 뒷배경에 계신 하나님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면 이 예언기도의 의도와 방향은 쉽게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개역한글판의 성경표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에 대해서는 마태족보에 나타나는 유다의 며느리 다말에게서라는 말을 유의있게 볼 것을 권합니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서 마태기자가 구약의 족보, 유대인들의 족보사상에 대해 그리 무시하거나

간과한 입장에서 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시 마태의 복음 기록은 그 대상이 이미 정통유대인들을

배제시키고 있고 있다는 점입니다.

달리 말해 마태기자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창작성에 빌려 예수님의 족보, 유대인들의 족보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며, 유대인들의 전통기록의 족보가 단순히 혈통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계획된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마태족보에 등장하는 메시야족보의 기술은 철저히 믿음에 근거한 계보입니다.

 

예언과 믿음의 관계는 예언이라는 테두리 안에 감춰진 미래에 관한 하나님의 현실적 사건에 관해

이것이 단순한 프로그램이나 짜여진 각본처럼 예약된 사람들서 마치도 정해진 인물들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개역한글판이 얼핏 예언에 따른 현실에서의 성취를 의미하는 듯 한다해도 그 역할에 대해서 지목하는 것이지

실제 인물들에 대해 언제 누가 어떻게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말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 유일한 예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또한 이것에 대해 엘리야의 재림설로 오해를 받게 된 세례요한의 경우에는 그가 마치도 엘리야가

환생하는 듯한 분위기로 이해하는 이들도 당시에는 있었지만 그나마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행히도 나중에

가서야 다시오는 엘리야에 대한 이해를 예수님의 말씀하심으로 뒤늦게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세례요한이 환생한 엘리야가 아닌 엘리야와 같은 성정(性情)을 갖고 태어난 것이며 이것은

사역(使役)하는 입장에서의 역할을 한 것을 의미한다.

아뭏튼 야곱의 예언 축복에 나타난 메시야 족보의 도래설은 그것이 야곱의 12아들 가운데 어느 한명에게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적 기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요셉을 축복하는 야곱이 어떠한 축복권을 근거로, 그 출처, 기원, 뿌리가 어디인가를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요셉을 축복하는 야곱의 축복권이 야곱 자체가 아닌 메시야 예수의 뿌리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며,

야곱 다음 세대인 12아들 가운데서 가히 누구 한명을 지칭해 약속된 메시야의 뿌리가 될 것이라는 해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메시야의 뿌리가 예언기도에 따른 요셉이냐, 야곱이냐를 논한다면, 이것은 마치도 예수님을 팔자가

마치도 예약된 가룟유다일 것이라는 설과 같은 인식으로 범하는 오류와 같습니다. 정해진 것인양 인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을 팔자가 마치도 예약된 가룟유다일 것이라는 설과 같은 오류입니다.

 

따라서 야곱의 축복기도에 나타난 메시야 족보설은 그것이 12아들 가운데 어느 한 자녀에게 나타날 것이라는

 지목형태가 아닌 12아들 가운데 오히려 믿음의 고백이 이뤄지는 지파에게서 나타나 정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굳이 12아들의 혈통적 자격론을 언급하자면, 12아들 모두 탈락될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르우벤]

르우벤은 야곱의 첫째 아들이자, 레아의 소생이다. 장자이면서도 야곱의 축복에서 오히려 단절되는 것은

그가 라헬의 여종 빌하와 통간하는 일이 곧 아버지의 침상을 오르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시므온&레위]

이 역시 레아의 소생이지만,(굳이 레아를 언급하는 것은 그나마 정실이었기 때문이다.) 세겜추장과의 사건에서 아버지의 마음에 큰 근심을 가져다 준 역할을 하게 된다. 대학살, 살육의 주된 선봉이 되었기에 오히려 이것으로 야곱은 귀향 도중에 주변사람들의 급작스런 공격이 있을까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유다]

유다는 이방여인 수아의 딸과 결혼하게 되는데 수아의 딸은 역시 이방여인이었다.

이제 [요셉과 베냐민]이다.

야곱이 사랑했던 이는 요셉이다. 야곱이 그렇게 사랑했던 라헬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베냐민의 경우 출산과정에서 부인을 잃게 되지만, 요셉은 사랑하는 사이에서 태어나 함께 양육하던 유일한 자식이다.

그리고 이제 나머지 자식들은 부인의 여종들 소생이었다.

그러니 실제 육체 자격론으로 치자면 12명 모두 해당이 안되는 셈이다.

 

예언이 있어도 그 예언이 현실 가운데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각자의 믿음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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