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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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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Tip-010]-30강 '예언서 신학'
2019-07-06 09:33:07 | 가로수 | 조회 920 | 덧글 0
*'바투 Tip'은 바투내용 중 보충할만한
성경 내용을 알려드리는 항목입니다

시대의 암울함은 곧이어 이단의 성행을
이루는 반복을 가져왔습니다.
국내 역사만 보더라도 이단의 발흥은
암울한 시기와 맞물려 시작되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이점을 찾자면 한결같은 이단측의
선택하는 성경이 '요한계시록'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 때, 마지막의 예언으로서
마치 이것은 이것을 비유하는,
그래서 정해진 날짜와 특정한 인물을
빗대어 예언의 성취로 맞추고자 하였습니다.

성경의 비유적 풀이를
종종 사용하는 이단특징은
한 때 바이블 코드라는 것을 만들어
성경의 원어글자를 가로세로 획으로
맞추어 숨겨진 예언이 있다는
조금은 특이한 발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성경의 텍스트에서 말하고자 하는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이었습니다.
이리저리 만들어서 특정한 한 시대의
징조로 몰아가므로 자신들의 주장이
맞다고 외치는 것에 요한계시록은
늘 주된 재료로 사용되어왔다는 것이죠.

오늘은 잠시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말세의 징후에 관한
이야기를 보려 합니다.

첫째, 말세의 시작징후와 말세의 때는 다릅니다.
한 때 유행하던 말세의 증거로
처처의 기근, 나라와 나라의 대적현상을 보며
말세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많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마24:4~8을 보면 말세가 아닌
재난의 시작이며 이런 일은 있어야할 것이고
이것이 곧 끝은 아니라 하였습니다.
(눅21:11, 막13:8)

둘째, 아픔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
(마11:16~17)
이것은 특정한 시대를 지목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이든지 나타나는 말세의 현상을
말합니다.
아픔을 당한 이웃이 있어도 느끼지 못하며
기쁨을 만난 이웃이 있어도 느끼지 못하는
이른바 공감의 현상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무관심, 무감각의 현상입니다.

셋째, 구별, 성별, 분별이 없어지는 현상.
(호4:9)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구별이 없는 것으로
믿거나 안믿거나 별다른 차이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믿음은 분명 다릅니다. 이방인의 믿음과도
분명 달라야 합니다.(마5:46~48)

넷째, 지극히 평범한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말세때가 되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예수님은 이것이 마치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을 것이라 하셨습니다.(마24:36~39)
즉, 모든 것이 우연일 것이라 생각하는
운명론으로 인생을 보기 시작합니다.

기도할 필요를 갖지 못하고 그저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눈 앞에 펼쳐졌음에도 이것은 그저
우연일 것이라며 죽어가는 모습이
바로 노아의 홍수 때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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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는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가 있어야 함을
잊지 않습니다.(빌 4:6)
기도를 쉬는 것을 죄로 여길 줄 압니다.(삼상 12:23)
하나님의 하실 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히6:18)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만이 상주실 이심을 믿으며 나아갑니다.(히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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